▲ 이 글은 여러 사례를 모은 픽션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디선가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풍기고, 벽난로에 불이 피워져 있고 커다란 트리와 고즈넉하게 피워둔 향초가 아른아른 흔들린다...... 알다시피, 다 거짓말이다. 한국 청년들의 자취방에 벽난로가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보아온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가 이로 허겁지겁 콘돔을 뜯는 순간에 허공에 흩어졌다. 남자친구가 없을 때는 혼자 트리에 별을 달면 되지 않았냐고? 모르는 소리. 한국에서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여자인 나는 크리스마스 스케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다고?”라며 질색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려 억지로 소개팅을 한 적이 너무 많다. 이건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다들 크리스마스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대해 떠들어 대지만, 실상은 처음 보는 낯선 남자와 번화가 한복판에서 원치 않는 스킨십을 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자리를 빨리 뜨기가 어렵다. 왜냐면, 크리스마스니까! 혼자 집에 가면 쓸쓸한 거라고 다들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있는 해에는 어땠는지 궁금해 할 사람들이 있겠지. 이르면 한 달 전부터 24일에 어떤 숙박업소를 예약할지 묻는 그들에게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너무 비싸고 등 꼬박꼬박 피드백을 줘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남자친구들이 식사 장소는 예약하지 않으면서 모텔부터 예약한다는 점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줄 케이크도 “나는 잘 모르니까”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매장 한쪽에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것들 중 하나를 집어오곤 했다. 그 케이크에 초를 꽂고 자르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이건 에피타이저인가.’ 물론, 이미 식사를 다 끝내고 와서 먹는 케이크가 에피타이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들에게 메인 요리는 섹스라는 것이다. 내 앞에 앉아서 케이크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와인 잔(아니면 맥주 캔)을 드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이제 케이크도 먹었겠다, 술기운도 오르겠다, 불 다 꺼놓고 시작되는 메인 코스는 우습게도 평소에 가던 모텔, 호텔, 집에서 시작됐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장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어디서든 여자가 산타복만 입으면 되는 날인 거지!”
솔직히, 장소가 달라지는 게 더 달갑지 않았던 적도 있다. 남자친구들은 항상 내가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비싼 선물을 주고, 비싼 호텔을 예약한 남자친구는 술기운 때문에 잠이 온다고 말하는 나에게 아주 서운한 얼굴을 했다. 아직도 그 눈빛이 기억난다. 그냥 바깥에 야경을 보며 와인이나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래도 이렇게 바쁜 와중에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그에게 고마워서, 결국 나는 그의 요구에 응했다. 자연스러웠다. 섹스 자체가 아주 별로였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도 아롱아롱한 눈빛을 보내기에, 크리스마스에 하는 섹스라고 해서 평소와는 다른 방법이라도 배워온 줄 알았다. 이 말은 아주 하고 싶었는데, 역시 그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못했다. 분명히 나도 당신과 똑같은 정도로 돈을 쓴 것 같은데, 왜 내가 더 고마워하면서, 아니면 거절할 때 그가 상처 입을까봐 미안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섹스를 빚 갚듯이 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게 빚진 게 없었다. 모든 스케줄을 그가 짜도록 둔 적도 없다. 그토록 말하는 ‘돈’도 냈다. 그런데 왜? “왜긴 왜야. 엄청 사랑했나보지.” 아니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크리스마스라고 더 사랑한 적은 없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24일에는 성당에서 열리는 성야 미사에 가야하니 25일에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너 때문에 연인들이 함께 보내는 이브 날에 나는 혼자 보내야 되잖아. 다른 애들은 다 여자친구와 보낸단 말이야.” 결국 그는 밤늦게까지 성당 앞에서 청년부 미사와 뒤풀이 자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아주 미안해했고, 그 자리에서 그의 동네 모텔로 갔다. 방 값이 굉장히 비싸다면서 그와 몇 군데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함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그날 내가 가진 잠자리는 따뜻한 기분보다 미안함에서 우러나와 가진 자리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매년 아주 많은 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들은 케이크를 먹고 자기들이 주고 싶은 선물(여기에는 크리스마스에 왜 주는지 모를 핑크색 알람시계 같은 희한한 물건도 포함돼 있었다.)을 준 다음에, 내가 아주 만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키스를 하고, 나의 몸을 만지면서 자신이 그려놓은 로맨스의 한 장면을 해마다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내 취향에 안 맞는 선물을 반짝거리는 보석이라는 이유로 쥐어준 그들에게 가끔 묻고 싶다. “내가 만족하기를 바랐던 거야, 아니면 당신이 만족하고 싶었던 거야?” 결국 한 명의 X와는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 거대한 다툼을 벌인 적도 있다. “그냥 밥이나 먹자고!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렇게 오빠는 사람 없는 데로 들어가자고 그래? 여기 좋다니까?”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런 말이 나와? 오늘은 로맨틱한 날이라니까!” 알겠는데, 밥 먹고 손잡고 걸으면 로맨스가 아니냐고.
“갈 거야? 크리스마스인데?” “어…… 가지 말까?” 그저 편안하게 영화나 보며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연말 시상식을 보고 싶은 나를 막아서며 물었다. 그때의 나는 남자친구를 혼자 놔두고 가는 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갈 거야.” 왜냐하면 나에게는 먹을 게 아주 많다. 게다가 부모님과 함께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이브부터 쭉 함께 노는 것도 좋고, 성당에 가는 것도 내가 좋아서하는 일이다. 내가 만든 식탁에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저 따뜻하면 된다. “진짜 갈 거야?”라고 묻는 사람을 보며 미안해 할 필요도, 자기가 직접 요리를 했다며 고마워해주길 바라는 사람을 반드시 곁에 둘 필요도 없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굳이 누군가에게 보상처럼 섹스를 해 줄 이유가 없다. 아니, 이제는 소개팅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별로. 개천절에 할게.아니면 한글날.”
이제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다시금 어디선가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풍기고, 벽난로에 불이 피워져 있고 커다란 트리와 고즈넉하게 피워둔 향초가 다시금 떠오른다. 길거리에 거대하게 서 있는 예쁜 트리를 보며 둘이 아니라 혼자 좋아할 수도 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집에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며 서양에서 그려놓은 크리스마스의 클래식한 장면들과 함께 혼자서 고요한 축제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올해 25일 0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혼자 바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억지로 연인을 만들러 왔다거나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섹스를 하러 온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집에서 슈톨렌을 먹으면서 새로 산 플레이스테이션 스파이더맨 팩을 돌리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지만.
글 | 박희아
디자인 |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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