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이 큰 성공을 거둔 뒤부터 예견된 결과였을지 모르겠다.
지난 11월, ‘주간동아’는 ‘박정희 탄생 100돌’이라는 커버 스페셜과 보이그룹 워너원의 리패키지 앨범 스페셜 기사를 함께 수록했다. 제목은 ‘우리가 WANNA ONE을 고소한 이유’다. 고소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도한 심쿵 매력 발산과 팬들 고막 농락에 관한 특례법 위반에 대한 처분.” 이전에는 ‘알쓸강잡 50 : 알아두면 쓸모 있는 강다니엘 잡학사전’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싣는 시사 주간지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워너원은 지금 한국에서 소비자가 존재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 매거진에서는 주 독자층이 남성/여성이냐에 관계없이 워너원의 화보를 기획하는 것은 물론, 부록으로 브로마이드나 미니북을 제공했다. 맥주 브랜드 ‘하이트’는 워너원을 CF 모델로 기용한 뒤 판매량이 늘어났고, 중저가 코스메틱 브랜드 이니스프리 또한 워너원을 캐스팅해 같은 효과를 봤다. 워너원의 팬이라면 그들이 광고하는 콜드브루 커피를 마시고, 모바일 게임도 할 수 있으며, 그들을 탄생시킨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테마곡 ‘나야 나’는 수없이 많은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다.
‘프로듀스 101’이 큰 성공을 거둔 뒤부터 예견된 결과였을지 모르겠다. ‘프로듀스 101’은 흔히 아이돌의 주 소비층으로 알려진 10~20대뿐만 아니라 30대 이상에도 큰 호응을 얻었다. 폭발적인 인기는 화제성을 만들어냈고, 화제성은 대중적인 인지도로 연결됐다. 원하는 출연자를 뽑기 위해 문자 그대로 선거운동을 마다하지 않은 팬과, 전 세대가 아는 대중성을 데뷔 시점부터 가진 팀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 각자의 ‘원픽’을 뽑는 투표 제도는 남자 아이돌에 관한 한국인의 다양한 취향이 반영되도록 했다. 한 팀이지만 강다니엘, 황민현, 이대휘, 라이관린, 옹성우, 윤지성 등을 뽑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그 결과 시사 주간지부터 한 은행의 SNS 홍보 문구로 ‘워너원보다 더 좋은’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까지, 워너원의 소비자는 어디에든 존재하게 됐다.
2017년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유일한 교집합. 다양한 세대와 취향의 소비자들이 결합돼 있고,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만들어진 팀이라는 워너원만의 특성은 이 팀이 수많은 욕망을 반영하도록 만든다. ‘프로듀스 101’의 투표 1위 강다니엘의 팬 중 일부가 분량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고, 또 다른 팬들은 워너원이 전국에 채 10개가 되지 않는 소규모 렌즈 브랜드 매장과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소속사 YMC 엔터테인먼트를 비판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픽’을 행사해 뽑은 팀에 대해 다름 팀들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까지 관심을 보이고, 각자 다른 관점에서 그들에 대해 평가하고 바라본다. 그 점에서 워너원은 지금 2017년 현재 대중이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무엇을 보고, 그들의 무엇을 투영하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시사 주간지 ‘주간조선’은 ‘왜 강다니엘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왜 많은 여성들이 강다니엘에 열광하는지 분석하기도 했다. 왜 많은 사람이 강다니엘을 뽑고, 그의 데뷔 이후 그토록 열광하는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한국의 사회상과 많은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수많은 투표로 뽑힌 11명의 멤버, 그리고 그 멤버들이 모인 하나의 팀은 그 안에 한 사회의 수많은 모습들을 반영한다. 내가 원하는 팀을 만들기 위해 선거 운동을 하고, 그 결과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원하는 출연자가 뽑혔음에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팀이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워너원은 뽑힌 과정만큼이나 내년에도 이어질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워너원은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기대하는 모든 욕망의 교집합이 됐다. 대중은 앞으로 이 팀을 통해 무엇을 보기를 원할 것인가. 그리고 이 팀은 앞으로 1년여의 활동을 더 한 뒤 해체된다. 팬들은 이미 멤버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워너원으로 모인 다양한 욕망은 또다시 무엇을 원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그룹이 11개의 갈래로 나뉘는 순간, 각 멤버의 소속사들은 이전보다 한층 복잡하고 예민해진 팬들의 요구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배진영의 팬들은 소속사 C9 엔터테인먼트가 그를 신인 걸그룹 굿데이 홍보에 동원하자 “내가 뽑은 멤버의 유명세를 이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중이 직접 뽑은 아이돌을 통해 대중의 수많은 취향과 욕망이 드러났다. 다가오는 2018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017.11.28 이미지 디자인 전유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