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 보아는 만 13세에 발표한 데뷔곡 ‘ID; Peace B’에서 ‘추카추카추!’라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18년 후, 보아의 9번째 정규 앨범이자 타이틀곡 제목은 ‘Woman’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10곡 중 6곡에 참여하고, ‘Woman’을 통해 ‘Girls On Top’을 부르던 시절을 회상하며 ‘여자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해왔음을 드러낸다. 대형 기획사에서 재능 많고 어린 소녀의 이미지로 데뷔했던 그는 20대 시절에 대해 ‘마지막은 항상 그래 차갑기만 해’(‘홧김에’), ‘Bitter-sweet 적당한 말 같아 / 쓰고 또 달고 괴롭히니까’(‘Encounter’)라고 돌아보며 30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변화는 지금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성들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아뿐만 아니라 걸그룹 소녀시대의 태연은 솔로 앨범 수록곡 ‘스트레스’에서 ‘You got me smoking cigarettes’ 같은 가사로 자신의 신경질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고, ‘Something New’ 뮤직비디오에서는 총을 쏘고 남자를 죽이기도 한다. f(x) 멤버였던 설리와 엠버의 현재는 그들이 9년 전 데뷔곡 ‘라차타’를 발표했을 때와 전혀 다르다. 팀에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로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설리는 팀을 탈퇴한 뒤 SNS에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면서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의 리얼리티 쇼 ‘진리상점’ 광고에서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할까?”라고 스스로 물은 뒤 “진짜 미친년인가?”라고 말한다. 엠버는 솔로곡 ‘Borders’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최근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성의 외모에 관해 간섭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데뷔 당시 SM 엔터테인먼트는 그에게 반바지를 입히며 보이시한 캐릭터를 부여했지만, 지금의 그는 외모로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아이유와 선미처럼 아이돌로서 인기를 모은 여성 뮤지션이 여성으로서 자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대중적 호응을 얻는 요즘이다. 하지만 SM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로 시작한 여성들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회사는 한국의 대형 기획사를 대표하는 이름이자, 소속 뮤지션들에게 막강한 기획력으로 시장에서 반응할 캐릭터를 입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아, 태연, 설리, 엠버 등이 최소 10여 년 가까운 경력을 통해 소속사보다 당사자가 좀 더 주도권을 쥐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SM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레드벨벳은 ‘Pick-A-Boo’에서 웃지 않고,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서늘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 바 있다.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f(x), 소녀시대, 보아 등은 모두 요즘이라면 ‘걸크러시’로 분류될 만한 콘셉트나,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알 수 없는 내면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H.O.T.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성 팬덤이 압도적이었던 SM 엔터테인먼트는 꾸준히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는 콘셉트를 선보이곤 했다. 지금 SM 엔터테인먼트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 각자의 변화와 회사의 방향이 결합된 결과처럼 보인다. 소속사는 회사의 상징적인 솔로 뮤지션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앨범으로 내도록 한다. 이미 f(x)를 통해 한국 걸그룹 중 가장 독특한 세계를 펼쳐낸 바 있는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은 역시 여성 뮤지션 켄지의 작사와 함께 ‘Pick-A-Boo’로 레드벨벳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한국을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여성 아티스트들과 스태프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영향력을 쌓아가고, 그것이 대중음악 산업 안에서도 일정한 결과를 보여준다. H.O.T.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나아가 한국 아이돌 산업의 역사가 현재 도착한 지점이다.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애교를 부리지 않거나 개인기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을 뿐인데도 일부 남자들이 레드벨벳의 콘텐츠를 불매하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설리는 노브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 일도 있었다. 그가 f(x) 시절 팬들을 실망시킨 행동과 별개로, 한국의 걸그룹 멤버들은 온갖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한편으로는 데뷔 10년 차의 여성 솔로 뮤지션들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여성들이 내는 결과물은 일정 부분 시장을 반영하면서, 시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담는다. 이 회사가 처음에 할 수 있는 일이 f(x)에게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보아, 태연, 레드벨벳이 각자 다른 캐릭터의 여성을 보여주며 점점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설리가 ‘진리상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그들 소속인 설리가 “설리 아직도 SM 소속이야?”라는 질문을 받게 만드는 이미지를 가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SM 엔터테인먼트가 좀 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현재 SM 엔터테인먼트에는 보아도, 태연도, 아이린도, 설리도, 민희진도 있다.
2018.11.06 이미지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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