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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가인은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 한 편을 게재했다. “죽을 각오 하고, 감옥 갈 각오하고 지금부터 제가 미친 이유를 한 가지씩 말씀드립니다.” 그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며, 대마초를 권유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얼마 뒤 그가 덧붙인 댓글은 한층 고질적인 사회적 편견을 지적했다. “왜 모든 여자 연예인들이 산부인과를 숨어 다녀야 합니까?” 얼마 뒤에는 AOA 멤버였던 초아가 자신의 탈퇴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저는 임신도 하지 않았고 낙태도 하지 않았고 결혼을 하기 위해 탈퇴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인과 초아가 화난 이유는 결국 하나의 점으로 모아진다. 왜 여성 아이돌에게 연애와 결혼, 임신이 흠이 되는지에 관한 문제다.
최근 방송된 KBS ‘냄비받침’에서는 프리스틴 멤버 시연이 걸 그룹으로서 겪는 불편한 지점과 관련해 생리를 언급했지만, 그조차 ‘마법’이라는 은어로 대체했다. 대한민국의 절반이 여성이고, 그들이 겪는 너무나 당연한 신체 현상임에도 대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하면 안 되는 이야기 취급을 받는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 변화나 성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한 지역구의원이 정례회에서 “‘생리대’라는 말이 거북하니 다른 표현(위생대)으로 부르자”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발언이 2016년에도 행해진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 아이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란 더욱 쉽지 않다. 유명 아이돌 소속사 관계자 A씨는 “신인개발팀에서 트레이닝하면서부터 말하면 안 되는 소재들에 관해 주의를 많이 준다. 데뷔하고 나서도 꾸준히 상황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라고 말한다. 이성이나 연애,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남녀 그룹 상관없이 주의해야 하는 소재다. 하지만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은 주 타깃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다소 차이를 둔다. A씨는 “보이 그룹이 팬덤을 대상으로 한다면, 걸 그룹은 대중들이 타깃인 친구들이 많으니까 그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쓴다.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 같은 이야기는 더욱 조심하게 하는 편이다. 임신이나 생리 같은 이야기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모든 여성 아이돌들은 대중이 정해둔 금기에 시달린다. 초아의 사례는 대중이 어떤 식으로 여성 아이돌의 자주적인 결정을 거부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초아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에 부쳐 팀을 탈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계속 임신과 결혼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다. 무려 6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구축해온 그에게도 자유로운 발언이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남성 아이돌들도 활동 초반에는 여성 아이돌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언에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남성 아이돌들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장난스럽게 연애나 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능청맞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말주변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여성 아이돌들은 연차를 불문하고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말을 하면 각종 커뮤니티에서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과거 JTBC ‘마녀사냥’에 나온 걸 그룹 멤버들이 자신의 성 생활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지만, 이는 남성 MC들이 여성인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분위기를 유도한 점이 크다. 반면에 여성 아이돌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남성의 분위기 유도 없이 성적인 뉘앙스의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종종 논란이 되곤 한다. 가인과 초아가 올린 글에는 “어떻게 여성 아이돌이 저런 말을 하냐”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린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아이돌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이돌 소속사 관계자 B씨는 “개인적으로는 여자 아이돌들이 좀 안됐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말 한마디를 꺼낼 때도 언제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앞선다. 이 사이에서 그들 개개인이 지닌 장점이나 역사성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초아의 한마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 저의 탈퇴가 열애설과 연관 지어지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오랫동안 열심히 활동해온 성실한 걸 그룹 멤버의 한탄에 가깝다. 남성과 단둘이 있는 사진이 찍혔다는 이유로 초아는 한순간에 자신의 커리어와 팀을 저버린 사람이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초아의 말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나 임신이 여성의 일을 중단시킬 만큼 중대한 ‘은퇴’의 요건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가인은 한 패션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짧은 옷을 입고 야하게 막 누굴 유혹하려고 그랬겠어요? 내가 그냥 이 옷이 입고 싶어서 입는 거예요. 그렇게 거슬리면 옷을 사주시든가.” 이것이 비단 초아와 가인이 겪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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