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가 생각하는 ‘시크함’이 무엇이든,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태도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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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은 데뷔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LATATA’에 대해 “곡을 쓸 때 팀원 한 명 한 명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나른한 분위기를 잘 살린 민니의 보컬과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허스키한 우기의 보이스로 곡의 도입부가 마무리되면, 메인 보컬인 미연이 차분한 표정으로 후렴구를 부른다. 다른 걸그룹들의 노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형식적인 구성이지만, 멤버들이 지닌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도드라진다. (여자)아이들은 노래 한 곡으로 절반이 넘는 멤버들의 포지션을 대중에 효과적으로 어필한다. 전소연의 말대로라면, 그가 멤버들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 음악으로 풀어냈다는 소리가 된다.
데뷔 때부터 ‘멤버 작사, 작곡 참여’ 같은 방식으로 홍보를 하는 보이 그룹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 쇼케이스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여성 멤버의 곡 작업 능력을 드러낸 사례는 프리스틴 정도에 그친다. 물론 모든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작사, 작곡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전원 작사, 작곡 참여’, ‘앨범 전곡 작사 참여’ 등으로 그들의 가능성을 부각했다면,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그들의 외모나 스타일링에 홍보 전략의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중견 걸그룹 소속사 관계자 A씨는 “아무래도 대중의 관심은 걸그룹 멤버들의 외모 변화다”며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홍보에 이용하는 것보다 이번 콘셉트에서 살이 얼마나 빠졌고,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바꿨는지 강조하는 게 훨씬 관심을 끌기 좋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남자 아이돌은 작사, 작곡을 한다고 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능력이 뛰어난 아이돌로 몇 차례씩 언급되는데, 여자 아이돌은 아무리 그 점을 강조해도 ‘다이어트 짤’이 먼저다.”
걸그룹 기획사 관계자 B씨는 “굉장히 청순한 콘셉트의 곡을 내놓고 나서 회사에서 팬덤의 반응을 분석해봤다”며 “주로 남성 팬들이 그들의 외모 콘셉트를 칭찬하고 여성 팬들은 ‘음악이 좋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걸그룹 멤버들을 작사, 작곡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여성 팬들이 능력이 좋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보이고, 이게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걸그룹의 콘셉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아이돌 그룹 프로듀서 C씨는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애교 많고 청순한 느낌을 더한 걸그룹 중에 최근까지 큰 인기를 끈 그룹은 트와이스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아이돌 산업에서 “청순하다”는 말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포괄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난해에 트와이스를 제외하고 인기를 누린 여성 아이돌은 청하, 레드벨벳, 블랙핑크, 마마무 등으로 청순함과는 다른 콘셉트를 내세웠다. (여자)아이들의 소속사인 큐브 엔터테인먼트 측은 (여자)아이들의 콘셉트에 대해 “시크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지, 걸크러쉬처럼 센 콘셉트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최근 소비자, 특히 걸그룹을 소비하는 여성들과 제작사의 인식 차를 보여준다. 소속사가 생각하는 ‘시크함’이 무엇이든,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태도가 변했다. 남성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무표정하게 춤을 추는 여성 아이돌들이 인기를 끈 뒤에 타이틀곡으로 자작곡을 들고 나온 (여자)아이들이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 여성 아이돌들의 가치관 변화 역시 걸그룹의 변화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프로듀서 C씨는 “페미니즘 이슈가 대두하면서 여성 아이돌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들의 능력과 가치관이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됐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당당하게 자기가 만든 곡이라고 얘기하고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긴 손톱을 보여주는 전소연을 보면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때 ‘Pick Me’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걸그룹 기획사 관계자 D씨는 “우리가 4년 전에 새 걸그룹을 내보낼 때만 해도 멤버들이 오히려 귀여운 여동생 콘셉트를 원했다”며 “하지만 요즘 연습생들은 오히려 ‘걸크러쉬’를 하고 싶다 얘기하고, 작사와 작곡 연습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어느새 여성 아이돌의 외모나 강렬한 퍼포먼스로 ‘걸크러쉬’를 말하던 시기를 지나, 그들의 가치관과 음악적인 실력까지 포괄한 콘셉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리고 멤버들의 작사, 작곡 능력을 앞세웠던 프리스틴은 보다 강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유닛 프리스틴V로 컴백할 예정이다. 같은 소속사의 2NE1에 이어 다수의 여성 팬을 확보한 블랙핑크도 곧 다시 무대에 선다. 소속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자)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눈에 띄게 와 닿는 변화다.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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