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에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을 시작한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은 단 나흘만에 “백만 명이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이에 대해 한 지상파 방송사 PD A씨는 유튜브 콘텐츠까지 제작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에서 느끼는 기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백종원 못 막죠, 못 막는데요. 저희끼리는 그러죠. 생태계를 교란하는 뉴트리아라고!” ‘백종원의 요리비책’ 구독자수는 23일 밤 9시 현재 179만명을 넘겼다. 그가 올린 동영상의 총 조회수는 17,833,165회에 이른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들도 넘보지 못할 파괴력이다.
또다른 지상파 PD B씨도 한탄한다. “우리가 섭외해야만 미디어에 노출되던 사람들이 유튜브로 가서 직접 돈을 버는 것만 해도 미디어 생태계 교란”이라는 것이다. 그의 우려처럼, 이미 오래전에 유튜브를 시작한 배우 신세경, 가수 악동뮤지션의 멤버 이수현뿐만 아니라, 소녀시대 멤버 태연, 엑소 멤버 백현, 첸, 에이핑크 멤버 윤보미 등 아이돌 그룹 멤버 여럿이 유튜버가 되어 노래부터 예능까지 모두 해낸다. 여기에 평소에 지상파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조차 얼굴을 비추지 않던 배우 강동원까지 ‘모노튜브’라는 이름의 채널을 열었을 정도니 TV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는 중요한 자원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이탈한 셈이다. B씨는 “TV에서 해야 될 아이템을 유튜브에서 다 해버린다. 심지어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그의 인맥으로 유튜브를 하고 있으니 다른 PD들 입장에서는 생존을 고민해야 된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반면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요리 유튜버 C씨는 입장이 조금 다르다. C씨는 오히려 매우 여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저도 백종원 팬이라 괜찮은데요?” 물론 그가 백종원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콘텐츠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TV로 백종원이 요리하는 모습이나 그의 노하우를 보려면 스트레스 받는 다른 장면들도 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백종원이 나와서 요리 얘기만 하니까 좋더라고요.” TV 시청자의 입장과 유튜브 제작자, 백종원의 팬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장치로써 유튜브와 유튜브 속의 백종원을 선택했다. 5천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다이어트 유튜버 D씨는 “뚜렷하게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백종원이 백만 명의 구독자를 가져간다고 해서 내 걸 뺏어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D씨는 웃으며 자신의 입장에서 백종원의 존재는 “상호보완재”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백종원 유튜브 보고 살이 찌면 내 거 보고 살을 빼면 돼요. 충분히 상생할 수 있는 구조예요.”
사실상 이미 유튜브 시장을 즐기는 크리에이터들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가 위협이라기보다는 기회로 다가온다. “판 자체가 커진 거니까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것이다. 다이어트 유튜버 D씨는 “지상파에서 방송 만드는 사람들은 경계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유튜브로 오면 기존에 TV만 보던 사람들이 이리로 넘어올 것이기 때문에 더 좋다.”라고 말한다. 이는 온라인 미디어 방송국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는 E씨도 마찬가지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연예인들의 유입으로 우리 플랫폼의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실감이 난다. 하지만 나도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일이다.” 현재 이들에게 연예인 유튜버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복잡한 존재가 맞다. 그러나 한 개의 영상을 보면 다른 추천 영상을 띄워 주는 유튜브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된다. 이미 유튜브의 속성을 어느 정도 파악해 이용하기 시작한 크리에이터들에게 백종원이나 강동원, 태연이란 존재는 SNS의 해시태그와 같은 유인책이다.
지금 유튜브 시장에 뛰어든 연예인들의 활약을 생태계를 교란하는 뉴트리아로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 입장에서는 토종을 위협하는 기이한 존재의 등장이므로.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많은 유튜버들은 “지금의 유튜브는 SNS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유튜브를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이 공존하는 SNS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실제로 연예인들 중에는 이미 유튜브를 SNS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3월에 입대한 보이그룹 빅스의 멤버 엔은 유튜브 개인 계정을 통해 미리 자신이 찍어 둔 브이로그를 꾸준히 게재했다. 예전 같았으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게재했을 편지도 유튜브 계정에 영어로 번역한 내용과 함께 업로드한다. 이에 대해 그와 비슷한 또래의 보이그룹 멤버 F씨와 G씨는 엔처럼 유튜브를 활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못해요.” 트위터나 팬카페에 글을 올리는 대신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유튜브 계정을 시작하면 다른 것도 올려야 되니까 너무 힘들어요.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또한 한 인기 걸그룹 멤버는 “나도 유튜브를 열어 볼까 생각했지만, 성격이 너무 안 맞는다. 음식 나오면 먹기 바쁘기 때문에 영상으로 찍을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인지도를 지닌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이 모두 유튜브 시장을 노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마무리되는 사이에도 ‘백종원의 요리비책’의 구독자는 1만 명이 늘었다. “왜 TV에서 하던 요리를 유튜브에서까지 하는 건지?” 마지막으로 취재에 협조한 케이블 채널 PD는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백종원이 게임 방송을 하면 볼 것이다.”라고 투덜대며 전화를 끊었다.
디자인 |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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