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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정연의 남장은 누굴 향한 걸까 From IZE



데뷔 초창기에 방송된 Mnet ‘트와이스의 우아한 사생활’에서 나연은 주사를 무서워하는 정연에게 “정연아, 너 걸크러시잖아.”라고 말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What is Love?’에서 정연은 남자 캐릭터를 연기한다. 줄리엣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쯔위의 상대역인 로미오가 되고, 지효가 반한 남자 동급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을 재연할 때는 여자 주인공 몰리(데미 무어)를 맡았지만, 남자 주인공 샘의 자리에 앉은 멤버는 긴 머리에 애교가 많은 사나고, 그는 겨울에 발매했던 ‘Heart Shaker’ 때처럼 스킨십에 거부감을 보이는 정연에게 애교스럽게 매달린다. 정연이 샘(패트릭 스웨이지)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데뷔 초창기에 방송된 Mnet ‘트와이스의 우아한 사생활’에서 나연은 주사를 무서워하는 정연에게 “정연아, 너 걸크러시잖아.”라고 말했다. 나연의 말처럼, 정연은 트와이스 내에서 걸크러시라 쓰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곤 했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멤버들을 한 명씩 벽에 밀치며 “넌 내일 봐, 넌 모레 봐. 오빠 믿지?”와 같은 대사를 읊기도 했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남자 주인공 유시진이 보여준 키스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으며, ‘남친룩’을 입은 뒤에 “일명 누심룩(누나들의 심장저격 룩)!”이라고 외쳐 다른 트와이스 멤버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What is Love?’ 뮤직비디오는 그동안 정연이 보여줬던 모습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 ‘라라랜드’ 속 라이언 고슬링을 연기하는 쯔위는 긴 머리를 묶고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수트를 입고 춤을 춘다. 반면 정연은 로미오를 연기하며 영화 속 배역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다른 멤버들이 남자 배역을 연기할 때에도 평소 여성으로서 보여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정연은 외모부터 행동까지 남성의 모습 자체를 연기한다. 트와이스의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는 많은 콘텐츠에서 정연을 남성의 위치에 놓고, 여기에 ‘걸크러시’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다. 걸그룹 마마무는 ‘음오아예’에서 남자인 줄 알고 좋아했지만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내용을 노래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남장을 택했다. 티저 영상부터 뮤직비디오까지, 마마무가 남장을 한 이유와 그것이 왜 여성에게 어필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를 계속 설득하려 노력한다. 반면 정연은 ‘What is Love’ 무대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애교 섞인 안무를 보여준다. 정연의 캐릭터는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상반될 뿐만 아니라, 트와이스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애교 많고 귀여운 여자를 보여줄 때는 철저하게 그 모습에 맞춰야 한다. 정연이 뮤직비디오에서 계속 남장을 하거나, 그를 ‘걸크러시’라고 소개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한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 A씨는 “인기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이성 연기자를 등장시키면 적지 않은 경우 팬들이 거부감을 표현한다. 특히 트와이스는 섹슈얼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밝고 해맑은 여성들의 이미지라 더 조심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여성 팬들도 중요하기 때문에 ‘걸크러시’를 맡는 멤버들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이런 말을 칭찬으로 생각하는 멤버들도 많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걸그룹 소비자는 남성들이다. 그렇다 보니 남성 팬들이 거부감을 느끼면 안 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남성은 외계인과 좀비, 트와이스의 프로듀서 박진영뿐이다. 뮤직비디오에서만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정연의 남장은 여성에게 어필하는 ‘걸크러시’를 일으키기보다 남성 팬들에게 트와이스 이외의 멤버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방법에 가까워 보인다.

같은 콘셉트를 활용한다 해도 어느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할지는 회사가 정할 부분이다. 다만 남장을 했다는 이유로 이를 ‘걸크러시’라 할 수 있는가, 나아가 외모를 통해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방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남는다. 20대 레즈비언 B씨는 “여성 팬들을 위해 정연을 멋있는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데 성소수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예 여성성을 감춰버리고 정연을 남자로 이용하는 방식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정연의 모습이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아니라 여성이 남성적인 모습을 갖췄을 때라야 성적 매력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30대 레즈비언 C씨는 “트와이스의 ‘What is Love?’ 뮤직비디오는 오랫동안 동성애자 커플에게 주어졌던 ‘누가 남자 역할이고 여자 역할이냐’는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What is Love?’ 뮤직비디오를 본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는 “LGBT 인권운동을 돕는 뮤직비디오 같다”는, 비꼬는 의미의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언뜻 보면 남성의 역할까지 여성 멤버들이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자와 여자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더 강화시키면서 남성 팬들에게 남자 역할도, 여자 역할도 모두 여자인 판타지를 실현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정연 씨는 드레스와 이런 옷 중에 어떤 게 더 자기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팀이 던진 질문에 정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저는 활동 때부터 바지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이런 옷이 더 저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바지가 반드시 남성을 위한 옷은 아니고, 정연이 바지를 편하게 입는다고 해서 그가 여성인데 남성적인 면모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정연은 바지를 입고 싶으면 입을 뿐이다. 하지만 트와이스 내에서 정연에게 부여된 역할이 그에게 바지를 입는,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는 고리타분해 보일 정도인 ‘치마=여성’, ‘바지=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도가 여전히 통하는 시장이 있다는 의미다. 정확히는 온갖 음원 사이트와 음악방송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그러니 회사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부응할 수도 있겠다. 다만 트와이스가 남성 팬들의 판타지에 적극적으로 화답할수록, 정연을 통해 회사가 구현하고자 하는 ‘걸크러시’가 무엇인지 의문을 느끼는 여성들 역시 늘어난다. 자신이 치마든 바지든 입고 싶은 옷을 입는 사람들 말이다.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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