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에 시작한 KBS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의 시청률은 최근 10%(닐슨코리아 기준, 이하 동일)를 돌파했다. 이에 대해 한 KBS 관계자는 “요즘 시청률이 잘 나와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왜그래 풍상씨’ 직전에 방영된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는 최종회에서 2.0%를 기록했고, 그보다전에 방영된 ‘오늘의 탐정’은 후반부에 1% 후반까지 시청률이 하락한 뒤 2.7%로 끝을 맺었다. 내부에서 “이번에는 잘 나와서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KBS처럼 극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드라마 시청률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은 SBS도 마찬가지다. SBS ‘흉부외과-심장을 훔친 의사들’은 내내 5~7%를 오락가락하다 최종회에서 8.4%로 막을 내렸다. 반면 현재 방송중인 ‘황후의 품격’은 14~15%대 시청률을 유지한다. 그러나 두 드라마의 완성도는 시청률과 반비례 관계에 가깝다. ‘왜그래 풍상씨’는 소위 ‘동생 바보’로 살아온 착하고 순박한 중년 남자 이풍상(유준상)은 그에게 의지해서 사는 철없는 동생들 때문에 힘든 일상을 보낸다. 그의 캐릭터에 대해 “풍상씨가 아니라 궁상씨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제작진은 이 작품을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일상과 사건 사고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드라마”라고 소개했지만, 이풍상의 동생인 이화상(이시영)이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을 착한 사람이라면서 옹호하는 모습이나, 이진상(오지호)이 저지른 사고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형 이풍상의 모습은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일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황후의 품격’은 지상파 드라마의 현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유형이다. 황제는 살인을 저지르고 내연녀가 이를 수습한 다음 온갖 악랄한 행위로 다른 여성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후궁 서강희(윤소이)가 친구 사이였던 전 황후의 머리를 물에 밀어 넣어 살해하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소위 ‘막장 드라마’의 자극적인 전개를 가득 넣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A씨는 두 드라마에 대해 “지상파 입장에서는 최대한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소위 ‘막장’으로 분류되는 소재들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VR게임을 소재로 복잡한 사건사고가 얽히는 작품은 처음부터 쭉 보지 않으면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반면“‘황후의 품격’, ‘왜그래 풍상씨’, ‘하나뿐인 내편’ 같은 경우는 다르다. 앞의 내용을 하나도 몰라도 앞뒤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이 작품들에 스토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익숙한 소재들에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내용을 유추하기 쉽다. 제작사 관계자 B씨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보다는 김순옥, 문영남이라는 이름만 대면 떠오르는 이야기와 장면들이 있다.”며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세대별 시청률보다 전체 시청률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케이블, 종편 드라마들은 전체 시청률이 낮아도 세대별 시청률에 신경쓴다. 관계자 B를 비롯한 다수의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모두 똑같은 의견을 말한다. “광고 시장의 주요 타깃인 2040 세대를 유입하기 위해서다.” 지상파 드라마가 장년층과 노년층을 기반으로 높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비 지상파는 타겟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드라마를 만든지 오래다. 같은 5%대의 시청률이라도 지상파 드라마와 비 지상파 드라마의 화제성이 다른 이유다. JTBC ‘스카이캐슬’의 시청률은 최근 20%를 넘겼지만, 40%에 육박하는 ‘하나뿐인 내 편’보다 훨씬 화제성이 높고, 배우들의 스타가 됐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광고 시장에서 선호하는 시청자층에만 집중할 일은 아니다. 지상파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지상파가 전체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 힘을 실으면서, 다른 가능성을 가진 드라마들이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최근 5%대의 시청률로 막을 내린 MBC ‘붉은 달 푸른 해’는 탄탄한 구성의 스릴러로, 아동학대라는 소재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완성도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붉은 달 푸른 해’는 지상파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드라마일 수 밖에 없다. “‘붉은 달 푸른 해’가 tvN이나 OCN에서 방영됐다면 훨씬 잘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관계자들도 있다. 시청자와 관계자들 모두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드라마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고, 방송사의 홍보와 마케팅 역시 채널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지상파에서 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드라마가 갈수록 나오지 않는 이유다. 배우들의 소속사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 한 유명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 C씨는 “지금 문화소비의 주축이 되는 젊은 세대들은 사실상 유명 유튜버를 알고 배우들 이름은 모르는 세대다. 지상파 드라마만 하면 광고 시장에서 ‘올드하다’는 평을 듣고, 트렌디한 이미지의 광고를 찍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상파, 케이블/종편, 웹드라마로 나뉘는 드라마 시장에서 많은 배우들과 소속사 관계자들은 과거의 ‘지상파>케이블/종편>웹드라마’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C씨는 “소속사 대표나 임원진의 성향이 보수적이면 여전히 지상파 드라마를 최우선으로 고집하기도 하지만, 실리적으로 트렌디한 이미지를 만들어 광고주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채널은 케이블과 종편 쪽이라 배우들도 그쪽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상파 드라마가 ‘막장’을 만들어서 인기를 끄는 게 문제인 것은 아니다.” B씨는 ‘스카이캐슬’을 예로 들었다. “문제는 질”이라는 것이다. ‘스카이캐슬’도 ‘막장’이라 할만한 부분들이 많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반영한 연출로 젊은 세대에게도 통할 수 있었다. “‘막장’이라도 잘 만들면 된다. 그런데 지금 지상파 드라마들은 젊은 세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싶다.” B씨의 말은 지금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를 보여준다. 많이 보기는 한다. 하지만 ‘스카이캐슬’같은 화제작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광고가 더 많이 들어오거나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배우들도 지상파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상파는 지금 드라마 시장 안에서 무엇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가. 명분과 실리, 하나는 잡아야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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