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음악 시상식, 또는 특집 프로그램의 무대는 주최사와 방송사, 기획사 등의 역량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자리다. 올해도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무대에 올랐고, 그들이 보여주려 한 것은 각자 달랐다. 인상에 남았던 몇몇 무대를 골랐다.
# 신인 걸그룹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net Asian Music Award‧이하 MAMA)’와 ‘멜론 뮤직 어워드(Melon Music Award‧이하 MMA)’는 올해 함께 10주년을 맞았다. 두 개의 시상식에서 신인 걸그룹 (여자)아이들과 아이즈원은 대규모 무대를 준비했다. 아이즈원은 MAMA에서 장미를 안무 대형으로 형상화한 ‘La Vien Rose’를 선보이며 그들이 Mnet ‘프로듀스48’ 출신이라는 점을 환기시켰다. 반면에 (여자)아이들은 ‘MMA’에서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무대와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금빛 의상으로 이목을 끌었다. 또한 수십 명의 댄서들과 함께 대규모 무대를 꾸미면서 다른 걸그룹들보다 강하고 저돌적인 여성들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신인 걸그룹들이 시상식에서 (여자)아이들이나 아이즈원만큼 큰 규모로 그룹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두 그룹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한국 힙합 망해라! X 뿜뿜! X 링딩동!
K-POP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걸그룹 모모랜드의 무대는 그야말로 온갖 장르와 이미지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K-POP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 힙합 망해라!”라고 외치던 래퍼 마미손과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변신 콘셉트를 활용한 합동 무대에 이어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샤이니의 ‘링딩동’, SS501 ‘I'm your man’, 비의 ‘La Song’ 등 후렴구가 유명한 곡들을 리믹스해 ‘빠져든다 리믹스’ 버전의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에서 탄생한 기이한 후크와 추임새가 담긴 댄스곡과 최신 유행 프로그램의 정신까지 흡수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K-POP일지도 모른다.
# 화사, 청하, 그리고 선미의 솔로
“마마무가 마마에 왔다.” 마마무 멤버인 솔라가 ‘MAMA’에서 상을 받으며 한 말이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이날 마마무가 선보인 개인 무대는 정말 큰 화제를 일으켰다. 특히 화사는 솔로 무대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그가 왜 주목 받는 여성 뮤지션인지 보여줬지만, 동시에 의상과 퍼포먼스의 내용 등에서 논란이 있기도 했다. 또한 홍콩에서 열린 ‘MAMA’에서 청하와 선미는 여성 솔로 가수들끼리 바통 터치하듯 진행되는 무대를 선보였다. ‘SBS 가요대전’에서 걸그룹 레드벨벳과 트와이스가 함께 S.E.S의 무대를 재해석하면서 한국 걸그룹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면, ‘MAMA’에서 청하는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의 리믹스 버전에 맞춰 독무를 췄다. 또한 선미는 ‘가요대축제’에서 JTBC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에 짝을 이뤄 출연했던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슬기, 보이그룹 워너원 멤버 이대휘와 함께 자신의 노래 ‘주인공’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여성 댄스 가수들이라도 꿋꿋이 세대를 이어가고 있고, 후배들이 따라하고 싶은 예시를 남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걸그룹이라는 분류 안에서 고민도, 환호도 함께 안긴 무대들.
# 세븐틴의 분해와 조립
보이그룹 세븐틴은 ‘MAMA’에서 ‘어쩌나’를 부르며 단체 무대로 시작, 유닛 무대로 보컬과 래퍼, 퍼포머들이 섞인 여러 가지 조합을 보여준 후 신곡 ‘숨이 차’를 발표하며 다시 한 팀으로 모였다. 기존에 발표한 곡의 색깔은 그대로 유지하되, 콘서트가 아니라면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유닛 무대를 더했고, 보컬팀인 우지와 퍼포먼스 팀 호시의 무대까지 넣으면서 13명의 멤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고 할 수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 무엇을 어필하고 싶은지 뚜렷한 목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예. 특히 ‘숨이 차’는 연말 음악 프로그램들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고, 그들이 발표한 지난 앨범 ‘You make my day’의 프리퀄 역할을 한다. 시상식이 가수들에게 대중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활동 시즌이라는 점을 이해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 성적 욕망에 관한 접근, 몬스타엑스
보이그룹 몬스타엑스는 ‘MAMA’에서 무대 위에 근육을 드러내는 시스루 의상과 재갈, 가죽 채찍 등으로 자신들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접근법은 화려하고 신나는 연말 시상식의 분위기에 과감하게 섹슈얼한 상상의 영역을 끌어들였다. 과거 ‘짐승돌’로 불리던 보이그룹 2PM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섹시함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는데, 팀의 성격을 확연히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연말 시상식의 흐름에서도 분위기를 바꿔 주는 역할을 했다. 다만 몸을 노출하는 타이밍과 무대 장치 등에 워낙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몬스타엑스가 불렀던 노래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던 것은 아쉽다. 멤버 주헌의 에너제틱한 랩보다 재갈이 먼저 생각날 정도.
# 단독 콘서트인 줄,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은 연말 음악 프로그램마다 계속 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 11월의 ‘지니 뮤직 어워드’에서는 팝 가수 찰리 푸스와 합동 무대를 가졌고, ‘MMA’에서는 부채춤, 삼고무, 탈춤 등의 요소를 활용한 퍼포먼스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IDOL’에 들어간 “얼쑤”, “덩기덕 쿵 더러러” 같은 추임새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아예 무대로 옮겨오면서 정말 ‘K’이자 ‘POP’을 보여준 무대. 두 번 참가한 ‘MAMA’에서도 일본과 홍콩 무대가 각각 달랐는데, 홍콩에서는 데뷔년도에 발매한 ‘O!RUL8,2?’의 리믹스 버전에서부터 시작해 ‘IDOL’로 이어지며 음악 시상식인 동시에 해외 공연인 ‘MAMA’의 특징에 어울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SBS ‘가요대전’에서는 데뷔곡 ‘No More Dream’부터 ‘IDOL’까지 15분 내내 연달아 라이브를 선보이며 무대를 활보했다. 군무에 집중하기 보다는 실제 콘서트처럼 돌출 무대를 뛰어다니며 콘서트에 가까운 시상식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 방탄소년단의 위상과 역량을 동시에 보여줬다. 이 팀은 이제 콘서트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망라한 무대를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여줄 수 있다.
# 퀸이 여기까지… 올해는 (예상대로) 록그룹 퀸의 노래가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2010년 ‘가요대축제’에서 이미 아이돌들이 ‘Bohemian Rhapsody’를 부른 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과 함께 퀸의 노래를 부르는 맥락이 달라졌다. 2010년 무대가 전설적인 록그룹의 노래를 다시 한번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이었다면, 올해는 국내 여느 뮤지션들 이상으로 인기 그룹이 된 퀸의 노래들을 부르면서 공연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린 쪽에 가깝다. 이날 퀸의 ‘Don't Stop Me Now’를 부른 보이그룹 갓세븐의 JB, 위너의 강승윤, 세븐틴의 도겸, NCT의 도영, 워너원의 김재환은 모두 팀에서 메인보컬 역할을 하고 있고,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로커 스타일링을 하고 나와 각자의 역량을 뽐냈다. 특히 강승윤의 모습은 과거 Mnet ‘슈퍼스타K’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위너에서의 모습과도 달라 주목할 만했다. 다만 어차피 할 퀸이라면 아예 ‘We Will Rock You’처럼 대규모 공연장의 관객들에게 모두 발을 구르게 하는 곡을 고르는 것도 어땠을까 싶다. 고척 스카이돔의 위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닌지.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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