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부제는 ‘Boy with luv’다. 과거 방탄소년단이 발표했던 ‘상남자’의 부제인 ‘Boy In Luv’와 연결된다.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는 네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이 네 장의 앨범 커버는 비슷해 보이지만, 네 번째 버전으로 갈수록 서서히 진한 분홍빛을 띤다.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뮤직비디오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각자에 맞게 디자인만 달리한 분홍색 의상을 입고 나온다. 그들은 온갖 컬러들을 분홍색에 흡수시킨다. 공식 사진에서는 전체적으로 붉은 빛을 강조한 가운데, 분홍색의 채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따라 멤버들이 입고 있는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흰색 의상들의 느낌이 달라진다. ‘MAP OF THE SOUL: PERSONA'에서 방탄소년단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그렇게 분홍색의 스펙트럼 안에서만 변화할 수 있다.
데뷔 시절의 방탄소년단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검은색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검은색에 온갖 화려한 문양이 프린팅 된 베르사체의 스트리트 패션을 주로 입었다. ‘화양연화’ 시리즈로 뿌옇고 아스라한 청춘의 고민과 꿈을 이야기하기 전까지, 방탄소년단은 반항, 적개, 허세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검은색과 흰색, 진한 초록색 등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해 ‘학교 3부작’을 완성했다. 힙합이라는 장르를 떠올렸을 때 직관적으로 생각나는 컬러로 초기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양연화‘ 시리즈에서 연한 파스텔 톤의 분홍, 파랑 컬러를 사용해 고민이 많아진 청소년들의 심리를 표현하고 ’WINGS‘에서는 화려한 포장과 반항적 이미지를 걷어낸 흰색과 검은색 타이포그래피의 조화를 꾀했다. ‘LOVE YOURSELF’ 시리즈는 ‘MAP OF THE SOUL: PERSONA’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흰색과 은색의 베이스 컬러에 방향을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색으로 반짝이는 타이포그래피는 그들의 다양해진 정체성을 대변한다. BTS와 방탄소년단, 혹은 ’DNA‘와 ’MIC Drop‘의 상반된 분위기를 모두 끌어안은 것이다.
‘MAP OF THE SOUL: PERSONA’의 시작을 여는 곡이 데뷔 초기의 올드 스쿨 힙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Into: Persona’와 “어쩌라고?” 식으로 무대 위에서 술잔을 들이붓는 안무를 하는 ‘디오니소스’라는 점은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방탄소년단과 현재의 방탄소년단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고, 힙합을 팀을 이루는 정체성 중 하나로 강조하던 팀은 어느덧 기존의 한국 힙합에서는 좀처럼 내세우지 않는 색깔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관습들에 영향을 받던 팀이 스스로의 틀을 깨고 나온다는 점에서 ‘어떤 색깔을 좋아하더라도 나는 나’라는 메시지보다 더욱 중요한 변화다.
변화는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부제는 ‘Boy with luv’다. 과거 방탄소년단이 발표했던 ‘상남자’의 부제인 ‘Boy In Luv’와 연결된다. 한글로 된 원제만 놓고 보면 두 곡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쉽게 추측하기 어렵지만, 방탄소년단은 ‘MAP OF THE SOUL: PERSONA'의 컴백 트레일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컴백 트레일러 ‘Intro: PERSONA’에서 RM은 ‘상남자’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교실과 흡사한 세트에 서 있고, 이 세트 안에서 RM의 움직임은 훨씬 더 크고 활발하다. 여학생에게 구애하던 남학생은 이제 여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형상과 마주하게 되고, 교실, 무대 위,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에서 ‘RM’과 ‘김남준’의 경계를 고민하고 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사람들이 원하는 나’는 결과적으로 ‘지금도 매분 매순간 살아 숨쉬는’ 사람이 되며, 그 순간 방탄소년단이 BTS로 변화하면서 일어난 일들은 국위선양이나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는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10대 소년이 20대로 거듭나면서 성장통을 겪는 도중에 일어난 평범한 사건 정도의 뉘앙스를 갖게 된다.
‘HOME’에서 RM은 ‘화양연화 pt.1’의 ‘이사’에서 ‘왠지 형이랑 나랑 막 치고 박고했던 때’와 ‘그래 기억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때’를 같은 플로우로 부른다. 슈가는 데뷔곡 ‘No More Dream’의 가사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 곡을 자신들의 인기가 높아지며 오랜 연습생 생활과 데뷔 초의 어려움을 함께 한 ‘논현동 3층’을 벗어나고, 이제는 ‘Mi Casa’라고 한층 세련되어진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지난 앨범의 팬송이었던 ‘Magic Shop’에서 BTS의 가게에 찾아온 팬들을 이제 'Mi Casa‘로 초대하고 있다. 얼마 전 음악방송에서 팬들에게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가장 아낀다는 가족사진을 선물한 것이나,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어가 서툴다며 미안해하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Please don't say your Korean bad.”라고 응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PERSONA’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음악과 상징 컬러가 함께 변화하면서 방탄소년단이 BTS가 되고, 거꾸로 BTS에서 ‘김남준’이나 ‘김태형’, ‘김석진’이 되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그리고 분홍색의 앨범 재킷과 무대 의상부터 기자간담회장, 음악방송 자리에서까지 방탄소년단은 절대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덕분에 더 많은 팬들의 공감을 얻는다. 애초에 그들이 만든 세계가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청춘‘이라는 메시지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기성 힙합과 팬덤이 가수와 나눌 수 있는 정서적 한계를 훌쩍 넘었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진 소년은, 사랑을 지닌 소년으로 거듭났다.
2019.04.25
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