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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이즈원이 걸그룹에 제시하는 기준 From IZE



‘비올레타’에서의 아이즈원은 기존 걸그룹과 같은 소재로 조금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귀엽고 예쁜 느낌을 살린 트와이스와 경쟁할 것 같은 걸그룹이다.” 지난 1일에 컴백한 걸그룹 아이즈원을 보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 아이즈원은 블랙핑크, 마마무, ITZY 등의 걸그룹들과 음원차트에서 경쟁 중이다. 파워풀한 사운드를 앞세운 블랙핑크, 바닥에 엎드려 강렬하게 머리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ITZY, 때로 뮤직비디오에서 남장을 하기도 하는 마마무는 ‘걸크러시’로 대변되는 최근 걸그룹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아이즈원의 ‘비올레타’는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기존 걸그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애써 눈물을 감춘 채 /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어’라며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에 비하면 ‘눈 감아도 느껴지는 향기 은은해서 빠져들어 / 저 멀리 사라진 그 빛을 따라 난 / 너에게 더 다가가’라는 ‘비올레타’의 가사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사랑 노래처럼 들린다. 분홍색과 노란색 등 파스텔 톤이 주를 이루고 프릴이 달린 원피스나 블라우스 등의 의상 역시 청순함을 강조한 기존 걸그룹들의 의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비올레타’에서의 아이즈원은 기존 걸그룹과 같은 소재로 조금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때로는 모순처럼 보일 정도다. 파스텔 톤의 의상에는 우아한 느낌을 주는 소재인 쉬폰 대신 볼륨이 있고 힘이 들어간 오간자 류의 원단을 사용한다. 복잡한 레이어드를 통해 다각도에서 오로라 빛을 내는 스타일링은 멤버들의 예쁜 모습에 대한 동경을 일으키면서도, 한 명 한 명을 분명하게 빛내며 당찬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이런 옷을 입은 채, 아이즈원은 무대에서 카메라를 향해 애교를 부리지 않는다. 무대 앞으로 꼿꼿하게 걸어 나오거나 역동적으로 춤을 추며 나오는 사이 가볍게 웃는 게 전부다. ‘비올레타'는 장원영을 필두로 키가 큰 멤버들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당당한 느낌을 주는 동작들이 안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멤버들이 걸어 나오는 동작이나 발레를 응용한 동작들은 춤을 추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몸 전체의 선과 그 선들이 모여 만들어진 커다란 동선을 완성한다. 멤버들 전체가 만들어내는 동선이 강조되기 때문에 특정 안무에 포인트를 준다는 이유로 여성의 특정 신체 부분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한국 걸그룹의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교와 섹스어필 등을 하지 않은 채 안무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비올레타’ 뮤직비디오에서 안유진이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안유진은 물이 튀는 바닥 위에서 긴 팔다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크고 시원한 동작을 보여준다. 안유진이 움직일 때마다 격렬하게 물이 튀고, 어두운 배경 속에서 춤을 추는 그의 몸은 섹슈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올레타’의 후렴구 안무가 얼마나 멋지고 힘이 넘치는 동작들로 구성됐는지만을 보여 준다. 카메라는 안유진의 춤을 섹시하게 표현하는 대신 춤을 추는 몸 전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춤이 가진 에너지를 그대로 전한다. 뮤직비디오에서 카메라 속 인물의 몸이 가진 힘과 당당함을 어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보이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던 요소다. 다른 멤버들 역시 뮤직비디오에서 대부분 웃음기 없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아이즈원의 멤버 채연이 JTBC ‘아이돌룸’에서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춤을 경계 없이 모두 멋지게 소화하는 것과 겹쳐보인다. 다시 ‘비올레타’의 가사를 보자. 이 곡에서 ‘꽃’은 아이즈원이 아니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넌 나의 비올레타’라고 말한다. ‘라비앙로즈’에서도 장미는 ‘내 맘을 타오르게’ 하고 ‘나를 춤추게’ 하며, 모든 시선을 ‘그 누구보다도 빛나게 빨갛게 물들일게’라는 정열, 또는 야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곡의 노래에서 모두 아이즈원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매력 있다거나, 매력이나 사랑스러움을 인정받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라비앙로즈’에서 상대방을 ‘빛나게 빨갛게’ 물들이고, ‘비올레타’에서 ‘누구보다 빛이 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고 노래한다. 두 곡의 안무 모두 후반부에 멤버들이 모여 화려하고 힘이 넘치는 춤을 추는 군무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명 걸그룹 프로듀서 A씨는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걸그룹은 무조건 예쁘면 된다”라고 말했다. 애교, 섹시함, 또는 청순함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여성을 표현하는 몇가지 이미지를 활용해서 ‘예쁜’ 모습을 어필하면 시선을 끌기는 쉽다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동안 어떤 걸그룹들이 인기 있었는지 떠올려 보면 이 말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아이즈원이 걸그룹 시장의 또다른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이즈원은 Mnet ‘프로듀스 48’을 통해 데뷔했다. 이 프로그램은 데뷔를 걸고 여성들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쉴 새 없이 여성혐오적인 부분들이 나오면서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아이즈원은 그 과정을 거쳐 당당하게 선 자신들의 열정을 노래에 담고, 무대 위에서는 애교나 섹시함이 아닌 완성도를 평가받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걸크러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긴 머리가 휙휙 넘어갈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이고, 제복이나 스포티한 복장이 아니라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도 당당하게 빛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팀이 됐다.

이 팀의 프로듀싱에 어떤 거창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프로듀스48’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아이즈원이 지금 걸그룹에게 새로운 기준점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는 있다. 지난 1일 발표한 아이즈원의 앨범 ‘하트아이즈’의 첫주 앨범 판매량은 132,109장으로 역대 걸그룹 첫주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지난 13일 ‘비올레타’의 일간 이용자 중 여성의 비율은 54.1%다. 이는 ITZY ‘달라달라’의 51.9%, 마마무 ‘고고베베’의 53.3%보다 높은 수치다. 음원을 듣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기에 이것이 아이즈원에게 여성팬이 많다거나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다수의 여성들이 음원을 듣는 데 무리 없는 걸그룹의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른바 ‘센’ 캐릭터를 내세우는 ‘걸크러시’를 하지 않아도, 무언가 여성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걸그룹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수많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 기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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