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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월드의 몰락 From GQ


히트작과 신드롬으로 쌓아온 김은숙 월드에서 한숨과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걸까?




만파식적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차용하고 있는 만파식적이라는 소재는 학창 시절에 한 번쯤 배운 설화에 등장하는 피리다. 하지만 일연의 <삼국유사> 기이 편을 보면 만파식적 항목에서 신라 신문왕이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지정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만파식적이라 불린 국보가 실제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작은 섬을 발견하고, 신문왕이 신하와 함께 섬을 향해 갔더니 용이 있었더라, 그리고 그 용이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져야 소리가 나는 것이니, 성왕(聖王)께서 그런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실 징조”라고 예언했다던 설화는 그 당시에 분열된 사회를 합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신문왕이 대동강 이남을 확보한 뒤였지만, 새로 편입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 아직 불안정했기 때문에 다양해진 영토의 토착민들끼리 통합이 필요했던 시기에 만파식적 이야기를 통해 “합쳐져야 소리가 나는 것”을 가진 그가 “천하를 다스리실 징조”를 맞이했다는 선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재하는 국보가 그 선언의 증거였다.

다시 <더 킹: 영원의 군주>로 돌아가면, 이 드라마는 결국 만파식적이라는 소재 하나에서 출발해 ‘누가 먼저 통합을 가능케 하느냐’, 나아가 ‘통합하여 천하를 다스린 자는 정의로운 자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16화를 끌어갔다. 김은숙 작가가 낯설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귀재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인에게 일상적으로,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와 그 안에서 새로운 설화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구전 설화라 함은, 사전적 의미의 설화 그대로에 빗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뜻한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파리의 연인> 당시의 ‘꿈’ 이야기부터 시작해, <도깨비> 속의 도깨비와 저승사자, 그리고 전생에 대한 이야기, <미스터 션샤인>의 독립운동가 이야기 등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환상동화에 가까웠다. 기록물로서의 작품이라고 한들, <더 킹: 영원의 군주>에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하나가 현실에 없는 로맨스 신화를 얘기하는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며 더 큰 의미를 부여받았다. 마치 구전 설화처럼.

“영이(우도환)가 골라온 커피가 황실 커피랑 맛이 똑같아. 첫맛은 풍부하고 끝맛은 깔끔해.” 하지만 구전 설화에 이런 커피 광고는 방해만 될 뿐이다. 두 개로 갈라진 만파식적을 합치며 세상을 구할 황제 이곤(이민호)의 입에서 나온 커피에 대한 칭찬은 시청자로 하여금 설화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시청자를 끌어온다. 이 모습이 약 30초간 지속되면서 시청자들은 CF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이곤의 서사는 구체적인 간접광고로 인해 급속하게 잊힌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파리바게트’를 ‘불란서제빵소’로 바꾸며 자연스럽게 간접광고의 효용을 보여주었던 김은숙 작가의 시도는 <더 킹: 영원의 군주>에 이르러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유명 작가의 드라마이자 회당 제작비가 20억이 들어간다는 드라마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은숙 작가 입장에서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평행세계의 간극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간접광고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물론 두 개의 세계에서 서로 맛보지 못한, 사용해보지 못한 것들을 서로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신기해하는 이곤과 정태을의 모습은 우주가 두 개라는 전제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도 있다. 하지만 30초씩을 할애해서 구체적인 칭찬의 말을 늘어놓는 황제의 모습은 이 세계에 대한 낯섦에서 우러나온 탄성이라기보다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보고서처럼 보일 뿐이다.

비단 간접광고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우주라는 평행세계 이야기와 만파식적의 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 현실에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CG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도로명 주소가 다른 부분이나, 캐릭터가 1인 2역을 하는 것에서 흥미를 느꼈다 할지라도, 이 두 개의 세계를 넘나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 우주는 지나치게 애니메이션의 느낌에 가깝다. 마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후반부 장면처럼 느껴지는 이 드라마의 CG는 안타깝게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실제 같다’고 칭찬받았던 부분을 반대로 비판의 말 안에 가둔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일 때는 감안할 수 있는 비현실성도, TV 드라마로 구현할 때 오히려 더 커짐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위화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 위화감은 불만족이라는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미 넷플릭스를 통해 수많은 CG가 들어간 외화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더 킹: 영원의 군주> 속 CG는 연일 “제작비 대부분이 배우 출연료로 간 것 아니냐”는 따끔한 지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이미 한국의 시청자들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TV 시리즈에 대한 기준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최근 SBS 드라마 중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모든 작품을 히트시킨 작가 김은숙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 드라마가 현실에 기대고 있는 부분 중 또 하나는 바로 배우 기용에 나태했다는 점이다. <상속자들>의 이민호와 <도깨비>의 김고은은 캐릭터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자신들이 구현했던 말투와 거의 흡사한 어투를 구사한다. 특히 이민호가 사용하는 황제 이곤은 <도깨비>에서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구사하던 장난스러운 성향부터 진지한 상황에 “참수다”라며 농담을 던지는 모습까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에 대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이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특별하고 특이한 말투와 단어를 사용해 늘 화제가 됐던 김수현 작가의 경우,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완전히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차별점을 확실하게 만들어왔다. 김수현 작가와는 다른 세대를 위한 트렌디한 드라마를 만든다는 김은숙 작가의 경우에는 최근작들을 고스란히 닮은 캐릭터들을 만들고, 배우 캐스팅조차도 자신들의 색깔이 강해서 배역에 녹아드는 대신 배역을 자기의 모습에 녹여 해석하는 쪽에 가까운 이들을 택해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더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인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태리와 김민정을 캐스팅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투도 살리면서 캐릭터에까지 변주를 줬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안타까운 결말이 초래된 상황인 셈이다. 이번 작품에서 유일한 수혜자가 된 우도환이 바로 위와 같은 사례다. 이처럼 명백하게 대비되는 예시를 두고 김은숙 작가의 남녀 주연 캐스팅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다.

<더 킹: 영원의 군주>와 전작들을 비교하면서 “작가의 공식이 바뀌었다”고 섬세하게 분석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이는 그동안 김은숙 작가가 써온 작품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늘 재미있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구전 설화처럼 대중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준의 신드롬을 만들어내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자기만의 설화를 만들어내던 김은숙 작가의 서사는 다음 작품에서 거대하게 가로막힌 편견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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