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방영일을 기다리면서 꼽아보는 캐릭터별 최고의 1분.
지선우(김희애)의 1분 이쯤 되면 거의 공포 스릴러 장르 수준의 긴장감이다. 전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이태오와 아들 이준영(전진서)이 야구를 보며 마루에서 들고 뛸 때, 지선우는 주방에서 사과를 썰고 있었다. 고작 사과를 썰고 있을 뿐인데, 이 장면은 곧 다가올 파국을 암시하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거짓말을 일삼는 남편과 자신의 속은 전혀 생각조차 못 한 아들을 보며 배신감과 원망, 굳게 지켜온 평온이 깨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 얼굴로 칼질을 하며 내던 딱, 딱 소리는 세심한 연출을 통해 완성됐다. 결국에 지선우는 크게 손을 베였지만 그 순간에 더 소름 끼쳤던 것은 피가 아니라 두 남성 뒤에서 홀로 남은 ‘엄마’라는 존재 그 자체였으니까.
이태오(박해준)의 1분 자신의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바람을 피우는 상대 여성과 몰래 키스를 할 수 있는 남성은 진실로 얼마나 될까. 설사 꽤 높은 숫자로 가능하다고 해도, 이 장면은 ‘인간적이다’라는 이태오의 공식 인물 소개에 고개를 갸웃하게 될 정도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늘 정서적인 허기에 시달린다’는 인물 소개의 한 줄이 부모님을 잃은 순간의 정서적 허기를 위로를 핑계 삼아 성적인 욕구로 채운다는 암시는 너무나 직설적이라 암시로서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지선우의 모습에 공감할 틈도 없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태오라는 남성에게 그 어떤 면죄부도 주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최고의 1분. 이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에 흐르던 스팅의 ‘My One And Only Love’를 더 이상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다경(한소희)의 1분 조금 뻔해 보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자신의 집에 찾아와 임신 사실을 밝히며 그 상대가 누구인지까지 드러내는 지선우를 보고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여다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치정극에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20대 중반의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둔 남성의 아이를 가졌으며, 그 남성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함까지 지녔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1분. 분노에 가득 차서 지선우의 머리를 때리고, 불현듯이 터져 나온 자신의 본능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모습은 여다경을 뻔뻔스러운 내연녀가 아닌 조금 다른 시점으로 보게 만들었다. 부모님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미래를 계획해본 적 없이 본능에 휘둘렸던 20대 여성의 현재 말이다. “진짜 사랑하는 건 너야”라는 거짓말을 믿은 순진한 여성이 이 1분 이후로 맞이한 삶은 절대 행복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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