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가 늘 선미다운 무대를 보여주고, 또 그 무대를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설득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진이 유명한 건 알아요.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되게 청순한 느낌이어서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청순한 거 안 좋아해요. 좀 오그라들어요.” 유튜브 채널 1theK의 ‘본인등판’에 출연한 선미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에 대해 언급한 여러 사람의 코멘트를 읽으며 자신이 느낀 것들을 일일이 수다 떨 듯 털어놨다. 얼마 전 신곡 <보라빛 밤>의 온라인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여자 솔로 아티스트들이 힘을 내서 이 신을 씹어 먹는 느낌”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던 그는 ‘본인등판’을 통해서는 자신에게 가슴 성형을 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걸 뭐 엑스레이 찍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그렇게 막 사실 그 정도의 크기가 아니거든요?”라며 웃었고, 비속어가 들어간 댓글도 아무렇지 않게 읽으며 1theK 제작진이 ‘선미의 역대급 걸크러쉬 본인등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만들었다.
그동안 선미가 <가시나>로부터 시작해 <보라빛 밤>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들은 늘 칭찬을 받았다. 때로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팬들이 추리한 몇 가지 상징의 해석을 두고 성적 대상화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그렇다 아니다를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미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계속 히트곡을 내놓았다. 처음 자신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가시나>의 전반적인 콘텐츠 기획을 만들어내는 데에 큰 힘을 쏟았던 선미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그의 줏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보라빛 밤>에 이르러 선미는 “청량하다”는 말로 곡을 설명하며 거울 위에서 나른하게 몸을 움직이며 섹스와 관련된 몽상을 기묘한 보라색의 이미지로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선미에게서 이런 섹슈얼하고 개성있는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미디어 쇼케이스나 ‘본인등판’에서 보여주는 모습들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지금 선미의 모습을 단순히 ‘역대급 걸크러쉬’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실 게으르다. 스스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선미는 특정 퍼포먼스 안에서의 스스로의 모습을 묘사하며 “싸패 같다”, “미친 여자”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스스로가 무대에서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보는 이의 성별에 가릴 것 없이 소구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선미가 추구하는 이 독특함은 <가시나>, <날라리> 등과 마찬가지로 <보라빛 밤>에서도 1절과 2절에서 번갈아 올라오는 여성 댄서와 남성 댄서들 사이에 섞인 자신의 모습을 통해 확실해진다. 그는 어떤 성별과도 자연스레 묶이며, 반듯한 TV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페스티벌 무대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의 콘셉트를 바꿔가며 노래를 부르고 말을 한다.
지금의 선미에게서는 어떠한 경계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콘셉트 프레임과 음악 산업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사람들에게도 선미는 늘 흥미롭다. 오랫동안 음악 산업에서 일해온 한 업계 관계자는 선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선미는 선미 그대로다.”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에 가장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진다. 자칫하면 소위 ‘섹시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틀에 갇힐 수 있던 그는 이제 무대 위에 앉든 눕든, 혹은 댄서들 사이로 무너져 내리든 다시 일어서서 예쁘게 웃었다가 서늘한 무표정이 되길 반복한다. 윙크와 하트가 유혹의 시그널이었다가 상대를 망치고자 하는 욕망의 섬뜩한 상징도 된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흥미로운 아티스트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나 지금의 우울한 K팝 시장에 필요한 재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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