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원펀치 시절의 앳된 소년을, 다른 누군가는 Mnet ‘쇼 미 더 머니’ 시절의 잘생긴 래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은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솔로로 데뷔하며 두 번째 출발선에 섰다. ‘쇼 미 더 머니’ 이후, 결코 수월하지 않았던 2년여의 공백 뒤에 나온 원의 이야기.
‘쇼 미 더 머니’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원: ‘쇼 미 더 머니’ 때 기억은 정말이지, 다 지워버렸다. (웃음) 기억이 안 난다. 요즘은 바쁘니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때는 하루에 플랜이라는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게 하루였다.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빨리 더 나이 먹기 전에 나란 사람이 세상에 공개돼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냥 처음 데뷔한 것 같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내 생각이라든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얼마 전 있었던 미디어데이는 오직 본인만을 위한 자리였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원: 어릴 때만 해도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다. 친척들이 오면 나에게 관심이 올까 봐 일부러 피해 있고 그랬으니까. 미디어데이 때도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졌다.
관심을 받는 만큼 부모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다.
원: 원래 뭐든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신다.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는 분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그만두셨다. 그 영향 때문인지, 17살 때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음악에 본격적으로 빠진 건 중학생 때였는데, 지금보다도 음악을 더 많이 들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는데, 흑인 음악을 좋아하면서부터는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힙합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17살 때에는 진보 형이 잼 레슨 비슷한 걸 열었는데, 그때 내 옆자리에 자이언티가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에 빠져서 단편영화제에 출품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지금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덕분에 학교에 다니지 않은 걸 후회한 적이 없다. 10시, 11시까지 야자 했으면 이런 경험을 얻지 못했을 테니까. 부모님 덕분이다.
이번에 발표한 싱글 중에 ‘그냥 그래’는 소년 같은 느낌이 있고, ‘해야해’에서는 상대의 섹슈얼한 모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청년의 얼굴이 나온다. 일부러 상반된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나.
원: 사실 그 두 곡을 작업할 당시에는 “세상에 공개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 “차트에 올라갈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여러 곡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그 두 곡을 좋아하셨고, 느낌이 너무 다르니까 자연스럽게 낮과 밤이라는 콘셉트로 가져갔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고 나니 더 하고 싶은 게 보인다. 나와 진짜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원래 내가 굉장히 여유 없이 사는 편이다. 생각도 너무 많고, 예민하고. 스스로도 그런 성격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 지금은 뭔가를 계속 바쁘게 하고 있으니까 저절로 여유를 갖고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냥 그래’는 매우 담백한 어투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당신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원: 꼭 한 번은 사랑에 관한 노래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 노래라고 해서 너무 간지러운 느낌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느낌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차차말론 형이 찍어놓은 코드를 들었고, 그게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지나치게 간질거리는 느낌도 없고. 가사도 이 느낌대로 풀어보자 싶었다. 실제로 내가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딱 그랬다. “좋아 죽겠어”, “너 없으면 안돼” 같은 신파 느낌은 싫었다. 여기에 흔한 말을 쓰되, 흔하지 않은 느낌의 제목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냥 그래’도 굉장히 많이 쓰는 말이지만 막상 노래 제목으로 나온 경우는 없지 않나. 하지만 ‘그냥 그래’라는 제목을 짓고 나서 솔직히 좀 걱정했다. ‘가수는 제목 따라 간다’는 말이 있으니까. 실제로 악플 중에서 되게 많은 게, “그래. 노래 그냥 그래”다.(웃음)
요즘도 그냥 그런가? (웃음)
원: 요즘은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두 곡을 작업할 당시에는 정말 우울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도 밝아지려 애쓰는 중이고, 일부러라도 가벼운 느낌을 많이 살린 음악을 만들려고 한다.
‘해야해(heyahe)’는 영문 제목이 독특하다.
원: 한글 말을 영어로 바꿨을 때 ‘heyahe’, 이렇게 정교하게 글자 모양이 만들어지는 게 좋았다. 시각적으로 알파벳 배열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하나. 음악을 만들 때 시각적인 요소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작업할 때도 편곡하는 형들과 함께 모이면 이런저런 영상부터 먼저 찾아서 본다.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이런 느낌으로 만들자”고 얘기한 뒤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해야해’에는 ‘온도’라는 촉각적인 요소부터 ‘야릇한 미소’나 ‘헝클어진 머리카락’, ‘완벽한 실루엣’ 같은 시각적인 요소까지 고루 들어가 있다.
원: ‘해야해’의 가제가 ‘잠을 자긴 아까워’였다. 그 가제 아래에 먼저 적어놨던 몇 가지 이야기가 있었고, 처음에 딱 비트를 듣고 ‘아, 여기다 그걸 쓰면 괜찮겠다’ 싶어서 그대로 옮겨다 썼다. 그러고 난 뒤에 제목을 ‘해야해’로 바꿨다. 보통 가사를 쓰기 전에 내가 지금 뭘 상상하고 있는지 먼저 쭉 써놓는다. ‘파티’에 관한 노래를 쓴다고 가정하면, 되게 유치하게 1차원적으로 막 적는다. 내가 플레이보이인데 어쩌고저쩌고…. 그다음에 표현들을 바꾼다. 유치하지 않은 표현들로.
꼭 가사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원: 신나게 노는 청춘에 관한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Skins)’에 나오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사 쓰는 게 음악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가장 쉬운 편이다. 비트 작업 할 때도 의견을 많이 제시하는 편이라서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리는 편인데, 그에 비하면 가사 붙이는 쪽이 좀 더 수월하다. 예전에는 최대한 멋있는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을 표현하기 좋다는 생각만 들면 아무리 유치한 표현이라도 그대로 쓰려고 한다.
2017.07.27 사진 이진혁(Koi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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