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프리스틴의 유닛 프리스틴V (로아, 레나, 은우, 결경, 나영)의 앨범 ‘Like a V’의 V는 빌런(Villain)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는 악당들이 무대 위에서 날뛰는 ‘네 멋대로’다. 그래서,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악당이 될 시간을 준비했다.
‘네 멋대로’에서 속삭이듯이 영어로 “Now you listen to me what I'm saying.”과 “I don't need sugar love.”라고 해요. 영어인데 한 번에 느낌을 파악하기 어렵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거기가 ‘당연한 얘기지 안 그래’라는 한국어 가사였어요. 그런데 저희가 영어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어요. 곡 분위기 자체가 팝인데, ‘내 멋대로’, ‘까무러치다’ 같은 단어들이 너무 한국어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제 파트가 팝과 한국어 단어가 주는 느낌 사이를 조율하는 파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반전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가사를 몰라도 한 번에 제 표정을 보고 얘들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걸 느끼실 수 있게요. 그래서 영어를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네 멋대로’에서는 이렇게 씩씩하고 강했던 자신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어서 좋겠어요. 사진 찍을 때도 정말 자연스럽더라고요.
처음 콘셉트를 받았을 때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런 자유로움 안에서 귀여운 콘셉트일 때보다도 더 절제가 필요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아직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가치관 같은 것도 2, 3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지금 나의 모습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싶거든요.
오늘은 어떤 캐릭터를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저 히스 레저 정말 좋아해요. ‘다크나이트’, ‘그림형제’,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 ‘브로크백 마운틴’ 등 다 봤어요. ‘아이 엠 히스레저’는 제 생일에 개봉했는데, 사실 저 그건 아직 안 봤어요.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나서 보려고 아껴뒀어요. 그에 대해 너무 궁금해요. 그 배역에 어떻게 빠지고, 어떻게 거기서 헤어 나오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까지 다요.
자신의 빌런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생각한 스토리랑 회사가 생각한 스토리랑 좀 달랐어요. 회사가 생각한 콘셉트는 원래 날 때부터 빌런인 거죠. 태어날 때부터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건 그거랑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빌런이라기 보다는 그냥 ‘못된 여자’의 느낌이었어요. 어떻게든, 내가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하는 여자고, 누군가가 갖고 싶어 하는 멋진 여자죠.
이번 콘셉트 준비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도 봤겠어요.
‘수어사이드 스쿼드’, ‘다크 나이트’와 ‘타짜’를 많이 봤어요. 특히 김혜수 선배님이 연기하신 정 마담을 보면서 자신감 있는 저 여성이 어릴 적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계속 상상했어요. 처음에는 저 모습보다 더 관능적이고 강렬했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은 깎이기도 했을 거고 점차 자신을 절제하는 법을 알게 됐을 거잖아요. 젊었을 때 저 여성이 지니고 있던 자유분방함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이번에 로아와 유닛 안무를 할 때 관능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언니는 묶여있고, 제가 막 언니를 가지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역할인 거죠. 이미 묶여있어서 어디로 도망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온전히 제 것이 아닌 사람인 거예요. 그런 느낌을 어떻게 하면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그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슈퍼 히어로보다는 악당을 더 좋아했을 것 같은데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보고 오히려 악당에게 빠졌어요. 사실 악당들은 사회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하잖아요. 이게 영화라 허용되는 부분인데, 그런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아요. 세상 구하는 히어로야 어디서든 칭송 받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그에 반하는데도 추종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이게 연출했다는 얘기니까요. 그리고 제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데 해리의 아빠인 제임스 포터를 좋아해요. 해리야 언제나 모든 걸 해결하는 좋은 사람이지만, 제임스는 그렇지 않아요. 좋은 아빠지만, 인간적으로는 나쁜 면이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인간의 정말 다양한 면이 다 담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죠.
프리스틴 V 멤버들을 히어로에 비유한다면 뭐가 좋을까요.
나영 언니는 캡틴 아메리카예요. 나영 언니라고 항상 정의로운 것만 택할 수는 없겠지만, 팀을 바라볼 때는 자기 이익보다는 팀에게 가장 옳은 것을 택하려고 하는 사람이거든요. 결경이는 비전과 사랑에 빠진 스칼렛 위치요. 자기가 매력적인 걸 알고, 자신이 지닌 능력을 100% 활용할 줄도 아는 사람이죠. 로아 언니는 호크 아이 같을 것 같아요.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이거든요. 단거리로 싸우는 사람의 장거리전을 도와주는 사람처럼요. 호크 아이처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은우는 블랙 팬서의 동생인 슈리가 잘 어울려요. 정말 똑똑하고, 재주도 많죠.
자신은 어떤 캐릭터예요?
블랙 위도우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것에 빠지면 그것을 쟁취하고 말 것 같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자기와 전혀 다른 다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비슷하고요.
무대 위의 캐릭터를 많이 분석한 것 같아요.
사실은 대본 분석 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드라마 대본을 사거나 프린트해서 제 생각을 대사 아래에 쭉 써요. ‘비밀의 숲’ 대본을 보는데요, 배두나 선배님이 연기하신 한여진 경위의 대사를 보면서 그가 이 대사를 할 때 마음은 뭐였을지 한 줄씩 써 봐요. 그러다 보면 가사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아니면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배우게 돼요.
글을 써도 자신의 생각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글 쓰는 분들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는 원고지에 써서 내는 숙제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앞으로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제 글에는 겉멋이 많이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오히려 무대에서는 연습에 연습을 거친 결과물이라 절제된 모습이 연습을 거쳐 나오는데, 사적인 자리에서는 안 그런 것처럼요.
그럼 내 멋대로 지금 당장 어떤 능력이든 가질 수 있다면 뭘 갖고 싶어요?
하루만 이렇게 많은 생각을 아예 안 할 수 있는 능력이요. 뇌에 온/오프가 있으면 오프를 누를 수 있는 기능?(웃음) 지금 제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도요. 막상 밖에 나가서 보면 그런 마음이 무너질 때가 많거든요.
이번 콘셉트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네요. 맞아요. 좀 더 세공된 저를 찾아가는 중인 거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도 저잖아요. 하루를 살면서도 배울 게 되게 많아요.
2018.06.08 photo by 이진혁(Koi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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